비생산의 생산

 

북구예술창작소

 

지난 몇년간의 무력한 시간은 예술 창작이란 삶에서 가장 먼저 잊히는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곧 쓸모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예술 활동은 과연 사회가 정의하는 생산적인 가치에 부합하는가? 나는 이 물음에 답하고 싶었다.

 

레지던시를 이유로 오가며 자연스럽게 관찰한 울산의 풍경은 생경했다.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원색의 기계설비들과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공장의 연기 그리고 여기에 한데 어우러진 검고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은 당연한 듯 이 작업의 피사체가 되었다. 순간적으로 포착한 평면의 사진 이미지에 ‘자르기’라는 수행적 행위를 반복한다. 이는 물질적이고 결과중심적인 ‘가치’에 역행하기 위한 시도다. 사진이 묘사한 대상보다 나의 행위와 행위를 담은 시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비효율을 가시화하는 노동집약적인 행위다. 이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들의 총합은 결코 무의미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한 장의 종이에 프린트 되어 소비된다. 이러한 매체의 특성을 거슬러 나는 수백 장의 레이어를 겹친 두꺼운 사진의 표면에 반복적으로 칼집을 내고 균열을 만들어 이미지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거나 디테일을 만든다. 선명하고 정교한  칼질에 의해 선이 겹치면서 쌓여 가는 층위들은 회화의 표현 방식과 유사하게 면을 만들어 낸다. 그 면은 두께를 가진 입체의 형상으로 조각의 면모를 따르며 평면의 이미지를 물질화한다. 이런 실험은 순간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의 생산 방식을 거스른다. 즉흥적으로 잘려 나간 레이어의 표면은 종이 위에서 솔직하게 현재의 상태를 드러내며 두께를 지닌 세계를 만들어 낸다. 오로지 손끝의 감각만으로 사진에 담긴 이미지의 형태와 개별성을 갖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선과 형은 우리가 사진 이미지를 보며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 사이의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 불명확한 경계를 상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