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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편리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자연을 삶에서 삭제해 나갔다. 인간은 힘겨운 동선을 강요하는 높고 험한 산을 깎아 길과 터널을 만들어 거리와 시간을 줄이는 성과를 만들었다. 더불어 자연환경이 가하는 추위와 더위를, 그리고 비바람을 방어하기 위하여 점차 더 견고한 구조와 인위적인 온도 조절이 가능한 시스템의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인간이 스스로 자연과 분리해 나가는 동안 인간 간에도 점차 서로를 분리/고립시켰고, 자연과 반대편에서 성장을 거듭해온 도시는 인간에게 또 다른 형태의 불안, 강박, 공포 등을 제공하였다. 최지선 작가는 인간의 삶이 자연을 압도해 나가며 만들어낸 도시 환경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형성되었던 불안증을 시각화 해오고 있다.

 

최지선의 초기 작업 <In Case (2014년작)>는 사람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 직접 손으로 접촉해야 하는 시설물을 수집하고 전용 하드케이스 가방 형식의 키트를 만들었다. 수집된 오브제는 대중교통 손잡이나 버튼, 공중화장실의 변기 시트, 수도꼭지, 문고리, 엘리베이터의 버튼, 지지대, 사무실 손잡이 등등 반드시 손으로 사용, 작동해야 하는 것들로, 접촉에 대한 극도의 불안과 공포의 상황을 대비한 생존 수단으로서 구성되었다. 손이 닿는 전용 시설물을 별도로 챙겨야만 집 밖을 다닐 수 있는, 위생에 대한 지나친 결벽증을 지닌 특정 캐릭터가 설정된 이 작업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인간 본성의 단면을 제시했다. 2015년부터 제작된 사진 <Hands>는 <In Case>에서 파생한 사진 작품으로서, 가방 안에 수집된 시설물을 사용하는 손을 촬영한 시리즈 작업이다. 오브제의 실체는 삭제하고 순수하게 손의 포즈를 보여주는 이미지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중 아담의 손과 창조주의 손이 맞닿아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을 패러디하는 등(<The creation(2018)>) 손의 표정으로부터 발산하는 언어는 고전 회화의 장엄미에 인간의 예민한 손놀림을 대입하여 다소 호들갑스럽게 보이는 긴장감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2019년도에 발발하여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전지구적 재앙에 가까운 팬데믹, COVID-19를 경험하면서 이것이 극성스럽거나 과장된 몸짓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이 처한 위험을 영화, 소설, 음모론처럼 떠도는 소문들 등 여러 경로를 통하여 경고를 해온 것처럼 최지선의 작업도 예견된 경고였던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2012년작 <My Sweet Home>시리즈 역시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연이나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개인의 모습을 제시했다. 본 시리즈 중 #2의 경우, 작가는 자신이 사용하는 오브제들을 모아서 전시장의 한 벽면에 정교한 모듈형식으로 채웠다. 그리고 그 공간의 일부는 자신의 몸이 꼭 맡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할애했다. 이는 이 물건 중 하나라도 빠졌을 때 전체의 균형과 모양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릴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자신을 이 환경 속에서 보호색처럼 안착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강박적 심리를 표현하는 설치 작업이다. 또한 #3에서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좌우 대칭의 형식으로 나란히 병치된 인물과 인테리어 사물들의 모습을 마치 거울 이미지처럼 연출하였다. 같은 공간 속이지만 분할된 화면 형식으로 읽히는 이 장면은 상호간 물리적 접점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드러낸다. 이 작업은 이후 #5나 #6 등의 연속성을 가진 작업으로 이어진다. 즉 자신의 물건에 둘러싸이거나 타인과의 접점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여 그 속에서 만족스럽게 적응하는 신체의 안정되어 보이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최지선은 <We don’t belong here>라는 사진 작업 시리즈를 선보였다. 폐허가 된 건물을 찾아내고, 특정 사물이나 식물들을 연출하여 일종의 무대화 된 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인간이 버리고 떠난, 혹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흔적이 점차 사라져 자연 속에 동화되고 있는 인공물과 구조물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다. 그는 주변 환경이 교차하는, 즉 건물 외부의 자연이 건물 내부의 구조를 침범하게 하는 연출과 화각에 조정을 가하여 외부 환경과 내부 환경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비롯하여 용도와 기능이 제거된 건물의 공간을 중심으로 이미지와 실공간, 자연과 인공물, 과거와 현재 등의 경계를 드러내면서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인간이 만들었던 사물과 공간이 자연속으로 동화되는 모습은 마치 <My Sweet Home>시리즈에서 보았던, 주변 환경에 점유되어간 인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최지선은 2022년도에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소금나루에서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다. 대기업의 거대한 생산시스템이 중심을 이루는 도시다. 작가는 이 독특한 지역의 외관에 주목하며 전형적인 공업도시의 특징을 보여주는 다양한 장면들과 구조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그 피사체는 주로 공장을 중심으로 볼 수 있는 구조적 풍경들인데, 흰 연기를 뿜는 거대한 굴뚝, 공장 구조물의 압도적인 외관, 거대한 기계들, 그리고 이 지역을 둘러싼 웅장한 자연이다. 작가는 각 장면마다 수백 장으로 겹쳐진 두께를 가진 이미지 출력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도려내면서 등고선으로 형성된 조형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각적 부조 형태의 부피를 형성한다.

 

이러한 매체적 전환의 과정은 그가 작업해온 이중적 매카니즘을 이어간다. 시공간의 현장성을 정교하게 포착한 이미지를 납작한 평면형식으로 전환케 했던 혁신적인 기술이 적용된 사진 매체는 최지선 작가에 의하여 조각의 전통적 성격으로 규정되었던 무게와 덩어리를 획득하였다. 작가는 기계적 기술력의 위용을 자랑하는 울산이라는 도시의 풍경을 하나하나 잘라내면서 그 피사체가 음각과 양각의 조화를 가진 재가공된 구조체로 제시했다. 이러한 오랜 시간 동안의 수작업, 즉 손으로 진행하는 단순한 반복의 작업은 공장에서의 노동 현장을 상기시키기도 하였고, 동시에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부조 형식을 위한 이음새는 기계적인 움직임으로부터 생산되는 오브제적 인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이전 작업들에서도 꾸준히 드러냈듯 대조적인 두 영역간의 경계에서의 ‘긴장’과 ‘동화’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복적 행위는 불안심리를 대체하고자 하는 방어기제를 작동케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최지선의 잘라내기의 반복이 이러한 심리작용을 의미한다면 잘라낸 이미지들을 서로 붙여서 조형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이에 대한 재생과 치유를 향한 행위일 수 있겠다. 그의 작업을 통해 불안의 서사는 인간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의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요소임이 명확해진다.

글. 김인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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